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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릉
헌종성황제(憲宗成皇帝) 이야기
헌종(재세 : 1827년 음력 7월 18일 ~ 1849년 음력 6월 6일, 재위 : 1834년 음력 11월 18일 ~ 1849년 음력 6월 6일)은 추존 문조와 신정익황후 조씨의 아들로 1827년(순조 27)에 창경궁 경춘전에서 태어났다. 1830년(순조 30)에 왕세손으로 책봉되고, 1834년에 순조가 세상을 떠나자 왕위에 올랐다. 8세의 어린 나이로 즉위하였으므로 할머니인 순원숙황후 김씨가 수렴청정을 실시하였다.
헌종 연간은 안동 김씨와 풍양 조씨의 세도정치가 서로 대립하여 두 차례의 역모 사건이 일어났으며 , 삼정(전정, 군정, 환곡)의 문란으로 백성들이 큰 부담을 안고 살아가던 시기였다. 또 천주교 탄압(기해박해)으로 인해 외국 군함이 처음으로 조선 근해에 나타나 민심이 흉흉했다.
친정 후에는 『동문휘고』, 『열성지장』, 『동국사략』, 『삼조보감』등을 완성하였으며, 각 도에 제언을 수축하게 하는 등의 치적을 쌓았다. 그 후 1849년(헌종 15)에 창덕궁 중희당에서 23세로 세상을 떠났다. 1908년(융희 2)에 헌종성황제로 추존되었다.
1837년(헌종 3)에 효현성황후를 왕비로 맞이하였으나, 6년 뒤에 소생 없이 세상을 떠났다. 그 후 두 번째 왕비를 맞아들이기 위하여 스스로 간택에 참여하였는데, 이는 왕이 간택에 직접 참여한 유일한 예였다. 헌종은 김씨 여인을 마음에 두고 있었으나 간택의 최종 결정권은 왕실의 어른인 대왕대비에게 있었고, 김씨 여인이 아닌 홍재룡의 딸 효정성황후가 최종 간택되어 왕비로 책봉되었다. 이에 헌종은 3년을 고심한 끝에 왕비가 후사를 생산할 가능성이 없다는 핑계로 대왕대비의 허락을 받아 삼간택에서 낙선한 김씨를 후궁으로 간택하였다. 헌종은 경빈 김씨를 위하여 1847년(헌종 13) 창덕궁 서쪽에 별궁인 낙선재를 지어주기까지 하였다. 예술을 사랑한 헌종은 경빈 김씨와 함께 이 별궁에서 고금 명가의 유필을 벗 삼아 지내기를 좋아하였다.
낙선재에 여러 차례 불려 들어갔던 조선 후기 서화가 소치 허유(許維)의 기록에는 낙선재는 헌종이 평상시 거처하는 곳이며, 추사 김정희의 글씨로 쓰여진 현판이 가득하다는 등의 묘사가 잘 드러나 있다.
효현성황후(孝顯成皇后) 이야기
헌종의 첫 번째 왕비 효현성황후 김씨(재세 : 1828년 음력 3월 14일 ~ 1843년 8월 25일)는 본관이 안동인 영흥부원군 김조근과 한성부부인 이씨의 딸로 1828년(순조 28)에 안국방(현 서울 안국) 외가사저에서 태어났다. 1837년(헌종 3)에 왕비로 책봉되었으나 헌종 사이에 후사를 낳지 못하였다. 1843년(헌종 9년)에 창덕궁 대조전에서 16세로 세상을 떠났다. 1908년(융희 2)에 효현성황후로 추존되었다.
효정성황후(孝定成皇后) 이야기
헌종의 두 번째 왕비 효정성황후 홍씨(재세 : 1831년 음력 1월 22일 ~ 1904년 양력 1월 2일)는 본관이 남양인 익풍부원군 홍재룡과 연창부부인 안씨의 딸로 1831년(순조 31)에 함열현(현 전북 익산) 관사에서 태어났다. 1843년에 헌종의 첫 번째 왕비가 세상을 떠나자 1년 뒤에 헌종의 두 번째 왕비로 책봉되었다. 헌종이 세상을 떠나고 철종이 왕위에 오르자 명헌대비가 되고, 1859년(철종 10)에 왕대비가 되었다. 이 후 왕실의 어른으로 지내다가 1897년(광무 1)에 대한제국이 선포되면서 최초의 태후가 되었다. 헌종 사이에 소생을 낳지 못하였으며, 1904년(광무 7년) 양력 1월 2일에 경운궁 수인당에서 73세로 세상을 떠났다. 1908년(융희 2)에 효정성황후로 추존되었다.